나의 교만을 볼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신의 축복이다.
살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교만은 너무나도 잘 보인다. 하지만 자신의 교만은 쉽게 볼수가 없다. 아니 영영 볼수가 없을지도 모른다. 단지 그런 교만을 스스로 깨우치라고 많은 시련이 찾아오는지도 모르지만 결코 나 자신에게 닥쳐온 시련이 나의 교만으로부터 찾아온다는 것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생명의 근원인 물은 낮은 곳으로 흐로 낮은 곳으로 모이게 되듯이 우리의 영적 생명의 근원은 우리의 영혼이 아주 낮아질 때 비로서 생명력이 부활할 수 있다고 본다. 너무나도 스스로 깨끔함으로 인정하려고 하고 완벽한 존재인양 인정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요.
신이 주신 나에게 가장 큰 축복은 무엇일까?
배움의 부족함을 깨우치게 해주셔서 영원히 살것 같은 배움을 지속하고, 나약한 육신을 주셔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해주시고, 가난을 주셔서 가난의 불편함과 그런 불편한 가난한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깨우치게 해주셨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이란 말인가?
나에게 최고의 지식과 최고의 건강과 최고의 재물을 주셨다면 나는 아마도 태어날 때부터 평생토록 교만이라는 불치의 병으로 살아갔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일확천금과 많은 지식도 결국은 완전한 내것이 될수 없고 단지 살아 생전에 남들보다 좀더 편리한 생활을 할수 있는 수단에 불과하건만 나는 왜 그리도 그것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살아왔을까? 라는 자기 반성을 해본다.
지금 신이 주신 가장 큰 축복은 나의 교만을 조금이라도 볼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신 것이고, 그로 인해 나는 삶에 있어서 무엇이 더 크고 중요한 의미로 존재되어야 하는지를 조금은 깨달을 것 같다. 아주 조금 말이다. 그 조금의 씨앗을 심어 내 세대가 아닌 나의 몇 백년 후의 세대들이 신이 주신 스스로의 교만을 볼수 있는 그런 축복의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 희망이 있다.
찰리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