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게 자주 질의합니다.
왜 그토록 책 읽기를 즐겨하냐고 말입니다.
나는 처음에는 그 질의에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 질의에 답할만한 내 지적수준에 다다르지 못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내가 책 읽는 것에 대한 호기심을 보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호기심으로 보이는 내 자신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게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답변들이 어떨때는 동쪽 방향이고, 어떨때는 서쪽 방향이고, 어떨때는 남쪽 방향이고
어떨때는 북쪽 방향이고, 어떨때는 방향을 알 수 없는 답변을 했습니다. 나는 답하고 나서
혼동이 찾아왔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란 생각에 잠겼습니다.
진정으로 내가 책을 읽기는 하는 것인가? 아니면 읽지 않고 보는 것인가? 아니면 또다른
행위인가? 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조그만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내 지식과 지혜와 재능은 누구나가 뛰어넘을 수 있는 수준이지만, 내 어리석음과 무지와 무식은 그 누구도 뛰어넘을 수 없는 수준의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내 안의 어리석음이 나를 자극했던 것입니다.
좋은 스승을 만나라, 좋은 스승을 만나라, 그렇지 못하다면 좋은 책을 통해서 좋은 스승을 만들어라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 이후로 책을 즐겨합니다. 책은 때론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수면제도 되고, 최고의 스승도 되고, 최고의 친구도 되고, 최고의 자극제도 되고 책은 내가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에 대한 그 모든 것에 대한 답변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니 답변이 아니더라도 적어도 막강한 힌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그런 답과 힌트를 보고도 답을 찾지 못하는 것은 바로 나의 어리석음이 세상에 그 어떤 이들보다 넘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에게 피해의식이 될 수도 있고, 이것이 나에게 지속적인 학습에 대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게 책 읽기를 왜 즐겨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지금은 이렇게 답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나중에 그 답이 변할지는 몰라도 말이죠. 나는 나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이 좋습니다. 나에게 어리석음이 있기에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이유가 존재하고, 공부하는 이유가 있기에 책을 즐겨하는 이유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무지함을 너무나도 사랑하고 있습니다.
찰리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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